글쓰기를 시작하고 싶고, 뭐라도 쓰고 싶은데 텅 빈 화면(혹은 종이)을 보면 눈 앞은 하얀데 머릿속은 깜깜하죠. 저도 방금 막 그런 기분이 들어서 무엇을 쓸지 고민하며 메모를 뒤적였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메모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어린 시절의 소중한 기억입니다. 이걸 소재로 쓰면 글 한 편이 뚝딱 나오겠다 싶더라고요. 글을 쓰고 싶은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하고 따뜻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글감 삼아 한 번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래에 제 글을 공개합니다. 

 

 

햇볕 아래 자라기

 

 볕이 좋은 날이면 엄마는 이불을 널었다. 해가 이불을 바삭하게 만들면 그날 잠자리는 보송하고 포근했다. 이불에서 온통 햇볕 냄새가 났다. 엄마는 햇볕 냄새를 좋아했고 엄마의 딸인 나도 그 냄새를 좋아했다. 

 

 

 엄마는 무거운 이불도 척척 널었다. 어린 나는 내가 덮고 자는 이불 하나 들기도 힘들었는데, 엄마는 바닥에 까는 두꺼운 이불도 번쩍번쩍 들었다. 한 번에 서너 개를 들어서 어깨에 걸치고 이불을 널러 가던 늠름한 뒷모습을 기억한다. 

 

 

 내게 기억하는 능력이 생긴 이래로 우리 가족은 늘 전세살이를 했다. 평생 이사를 다니며 살았다는 뜻이다. 초등학생 때는 13평짜리 작은 아파트 1층에 살았는데, 그때 엄마는 이불을 베란다 창틀에 널었다. 창밖으로 온통 풀밭이었고 나무가 빽빽이 자라 있었다. 두툼한 이불을 그 집 창틀에 널면 내가 눕기 딱 좋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지금 나는 엄마보다 훨씬 크지만 그때는 조그맸다. 아마 130cm, 아니면 140cm 정도 되지 않았을까. 어린이들의 키는 정말 가늠하기 어렵지만 창틀을 가볍게 오르내리고 거기 누워있고 그랬으니 아주 작았을 거다. 

 

 

 엄마가 튼튼한 팔로 창틀에 이불을 널어주면 나는 그 위에 올라가서 엎드려 있었다. 창틀을 가운데에 놓고 창 바깥쪽으로 한쪽 다리와 팔을 내놓았다. 반대쪽 다리와 팔은 베란다를 향해 있었다. 엎드려서 가만히 있으면 등이 따뜻해졌다. 햇볕에 등이 익으면 몸통을 돌려 위를 보고 누웠다. 햇빛이 눈부셔서 눈은 팔뚝으로 가려야 했다. 그렇게 엎었다 뒤집었다를 반복하며 나는 이불과 같이 햇볕에 익었다. 이불은 점점 바삭해지고 나는 점점 그을렸다. 지금은 하얗다는 소리를 많이 듣지만 사실 나는 까무잡잡한 어린이였다. 

 

 

 햇빛이 달군 내 뒤통수를 만지는 일이 좋았다. 해가 내 머리만 집중적으로 보살펴준 것 같았다. 내 뒤통수를 쓰다듬는 시간이 많았으니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스스로를 격려하고 있던 셈이다. 지금도 나는 내가 기특할 때 종종 손을 정수리로 가져가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이고 잘했다. 아이고 고생했다. 아이고 대견하다 외치며.

 

 

 까칠한 중학생, 우울한 고등학생으로 자라나는 동안 나는 늘 내 결핍에 집중했다. 너무 갖고 싶었지만 끝내 갖지 못했던 노스페이스 패딩, 높은 싸이월드 방문자수, 잘생긴 남자 친구 등 많은 것들이 내 인생에 없었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햇볕을 맘껏 쬐며 자라난 행복한 어린이였다는 것을. 햇볕 냄새 풀풀 풍기는 이불을 덮고 잠든 동안 놀라울 만큼 쑥쑥 자라났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