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야

 친구를 만나면 참 좋습니다. 그런데 어떤 친구들은 만나면 기운이 빠지고, 기분이 나빠지기도 합니다. 그런 친구들의 특징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감정을 나에게 쏟아내는 것'입니다. 

 

 저는 친구를 만나면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주로 들어주는 쪽입니다. 물론 친구들이 자기 이야기를 해주는 건 정말 좋고 고맙습니다. 그런데 가끔 해도 너무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자기의 부정적인 감정을 저에게 와르르 쏟아냅니다. 저한테 털어놓으면서 본인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겠지만 저는 가만히 있다가 똥을 떠안은 것처럼 불쾌하고 힘들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거리를 두고 멀어진 친구들이 몇몇 있습니다.

 

 불편할 때마다 그때그때 말하면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워낙 성격이 싫은 소리를 잘 못 합니다. 쓸데없이 인내심은 좋아서 '쟤가 요즘 엄청 힘든가 보지, 이러다 말겠지, 괜찮아지겠지' 하며 오랫동안 참고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친구들은 힘든 상황이 끝나도 계속 힘들어합니다. 또 새로운 고난에 부딪히면 또 힘들어하기 때문입니다. 

 

 

 힘든 걸 힘들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건 참 좋습니다. 그런데 자기감정을 모조리 다 친구에게 쏟아버리는 건... 글쎄요, 상대방이 괜찮다고 한다면 모르겠지만 아무리 친구를 좋아하더라도 영원히 친구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줄 사람이 있을까요? 적어도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아, 일기를 써!

 그래서 저는 그런 친구들에게 이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바로 '일기'입니다. 일기를 쓰면 감정 정리가 되기 때문이에요.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먼저 정리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구구절절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저는 친구들을 정말 좋아하지만 제 마음이 힘들 때 이걸 다 친구에게 쏟아내는 걸 잘 못하겠더라고요. 친구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 우울이 전염되기를 원하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힘든 마음은 참는다고 해서 없어지지가 않잖아요. 

 

일기는 어떻게 쓰냐면요

 

 속에만 담아두기 답답해서 저는 일기를 썼어요. 마음속에 분노나 슬픔이 가득 찼을 때 일단 숨을 크게 쉬고 일기장을 펼쳐요. 그리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다 적어요. 친구한테 전화해서 말하는 대신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고 글을 쭉 적어나가는 거예요.

 

 글을 자주 쓰지 않은 분들은 물론 처음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근데 글을 쓴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말로 얘기하고 싶은 걸 그대로 글로 쓴다고 생각하고 쓰면 크게 어렵지 않아요. 속으로 '진짜 짜증 나서 다 부수고 싶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걸 그대로 적어보는 거예요. 

 

 글로 쭉 쓰다 보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아요. 힘들 땐 마음이 엄청 혼란스럽고 막 폭풍에 휩쓸리는 것 같이 정신없잖아요. 그럴 때 감정을 글로 표현하면 그 혼란이 줄어들어요. 그 폭풍 같은 마음을 정확한 단어로 써놓으면 더 쉬워지거든요. 선생님이 엄청 어려운 수업을 하는데, 이때 칠판에 필기를 해주면 더 쉽게 느껴지는 것처럼요.

 

 마음이 많이 괴로우니까 엄청 많이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도 막상 써보면 한 페이지 채우기도 힘들더라고요. 일기를 쓰면 '내 마음이 이렇구나'하고 한 번 더 알아차릴 수도 있어서 좋고요, 쓰다 보면 해결책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대부분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그냥 기다리다 보면 지나가겠지', '괴로워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군. 덮어놓자'하면서 끝나곤 하지만요. 

 

 그렇게 끝나더라도 괜찮지 않을까요? 쓸데없는 걱정과 고민을 덜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마음을 한 번 정리하고 나서 친구와 이야기를 해보는 거예요. "나 이런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마음이 이렇더라" 하고요. 

 

 요즘처럼 사는 게 힘들 땐 각자 저마다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내 고통이 친구에게 짐이 된다면 그것만큼 속상한 일도 없겠죠. 우리 모두 각자의 마음을 잘 돌보고 친구의 아픔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